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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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7   '거리'와 '시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 (12)
만화/애니메이션  2007/05/27 04:10

'거리'와 '시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


초속5센티미터

이번엔, 무려 '국내개봉'도 한다!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의 아이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처음 알게 된건 「별의 목소리」가 막 나왔을 무렵인 2002년 초쯤이었다. '1인 자가제작 애니메이션'이라며 당시에도 꽤 큰 화제였고, 작품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들이었다. 조금 애를 써서 구해본 나의 반응도 역시 '놀랍다'였다. 그뒤로 나 또한 주변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애니메이션에 대한 입소문을 열심히 전하곤 했지만, 속으로는 결국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빛나간 듯 하다. 이제 신카이 마코토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애니메이션팬들에게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별의 목소리 DVD가 국내에 정식발매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현지에서 개봉한지 두 달정도 된 신작을 국내에서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니……. SICAF 2007 영화제가 열리는 용산CGV의 상영관에 혼자서 앉아있자니 새삼스레 이런저런 감흥이 몰려왔다.

'거리'에 대한 짧은 세편의 이야기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Their Standing Points)」 이후, 신카이 마코토가 계속 집착해온 주제는 아마도 '거리'과 '시간'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거리'와 '시간'은 으레 '안타까운 마음'을 동반한다. 「별의 목소리」에서는 주인공 치카코와 노보루는 설정상 '영원에 가까운 먼 거리', 빛의 속도로도 쉽게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두 주인공 사이의 '안타까운 마음'은 서로다른 '시간축'을 통해 극대화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거리'나 '시간'은 직접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계속 잠든채 꿈을 꾸고 있는 여주인공 사유리와 남자 주인공 후지사와 간에는 '시간'과 '공간'상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약속의 장소'를 상징하는 탑은 쉽게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 존재한다.

「초속 5cm: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도 역시 영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인물들간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거리(distance)'란, 물리적인 거리임과 동시에 심리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서로 닿을 수 없는 물리적인 거리,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마음의 거리- 그런 것들은 때로는 동경이 되고, 안타까움이 되고, 슬픔이 되고, 혹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토오노 타카기는 어린시절 특별한 마음을 나눈 시노하라 아카리와 멀리 떨어지는 이별을 당하게 되고, 그 안타까운 경험 이후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한 동경'에 삶의 목적을 부여한 채로 살아간다.(제1화 '벛꽃무리桜花抄') 토오노에게 짝사랑의 마음을 품게된 중-고등학교 동창 카나에.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지만, 먼 곳만을 바라보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제2화 '코스모나우트Cosmonaut')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살아오던 토오노는 문득 스스로를 향한 협박과도 같았던 그 감정이 자신에게서 사라져있음을 깨닫는다.(제3화 '초속5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


더욱 강화된 '신카이 마코토 스타일'

 신카이 마코토에게는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실사를 바탕으로 치밀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배경이라던가 일상의 장면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내는 시선, 그러니까 이를테면 '집으로 막 들어와 켜진 현관등 불빛에 비친 먼지'에 대한 묘사 같은 것 말이다. 이번 「초속 5cm」에서도 그런 것들은 여전하다. 그리고 더 강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순간순간 빠르게 이어지는 독백의 대사라던가('비에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와 같은 말들을 늘어놓는), 하늘의 이미지, 뮤직비디오처럼 노래와 싱크를 맞추는 장면(그리고 텐몬의 음악),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주요 감정선의 포인트로 잡고 나가는 부분.. 등, 이러한 특징은 어찌보면 장단점이 명확하고 호오가 갈리는 부분이기도 한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설프게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좀더 갈고닦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신카이 마코토 스타일'은 확실히 긴 호흡의 장편에서보다는 짧은 호흡의 단편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장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조금 늘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면, 「초속 5cm」는 의식적으로 조금 빨리 끊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제3화 초속5센티미터'에서 그녀와 '스쳐지나는(스쳐지나간듯한) 장면', 그 짧은 순간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의 폭풍을 수없이 이어지는 짧은 컷들에 담아 주제가와 함께 펼쳐내는 마지막 시퀀스는 환상적이다. (특히 여기서 보여지는 '기억속의 장면들' 중에서 1,2화에 사용된 장면들보다 새롭게 추가된 '기억들'이 인상깊다. 너무 짧게 지나가서 잘못 본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간 살아온 동안 스쳐지나갔거나 아니면 단지 스쳐지나간듯한 '착각'이었던 그런 기억들.)


 '전차'라던가, '우주비행체'라던가, '학교'라던가,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보였던 요소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등장하지만, 이전 두 작품과는 다르게 'SF적인' 부분은 전혀 없다. 덕분에 '메카닉' 디자인 같은 걸 살펴볼 기회는 없지만, 그래도 뭐 어떠한가 싶다. 아름다운 영상미만은 여전하니까..




ps. CGV용산 9관에서 보았는데, 조금 흐릿한- 초점이 제대로 안맞은 듯한 영상에 보는 내내 괴로웠다. 디지털 소스를 필름으로 옮기면서 발생한 문제는 아무래도 아닌 거 같고, 영사의 문제였던 것 같다. 같은 상영관에서 계속 필름을 바꿔걸어야 하는 영화제의 애로사항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컴퓨터로 본 예고편의 쨍-한 720p HD 화질은 아니더라도, 엔딩 스탭롤이라도 선명히 보여줄 정도는 되었어야 하는거 아닌가?


ps2. 2007.06.25. 추가.
어제 CGV 상암에서 다시 보았는데, 역시 이날 SICAF에선 영사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맞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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