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왼쪽으로 가는 여자 - 해당되는 글 1건
2007/05/24   그 오후 네시 (2)
잡담/단상  2007/05/24 03:07

그 오후 네시




...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인연의 고리를 풀어버리고 떠난 남자입니다. 그런데 여태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하지 않고 있었다니…. 여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복잡하게 계산하지 말고, 단순하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

여자는 재빠르게 이유를 만들어냈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이라고 남자가 인사를 했습니다. 여자는 "웬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휴대폰에 저장되있는 전화번호를 정리하다 여자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그냥 전화를 걸어봤다고 말했습니다.

"내 전화번호를 왜 여태 갖고 있어요? 난 이미 지운지 오랜데‥"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이제 지울거라고 하면서 몸 건강하게 잘 살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전화받는 목소리가 꼭 내 전화인걸 알고 받는 거 같아서, 난 당신도 아직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줄 잠시 착각했어요. 하긴, 난 늘.. 착각하니까."


남자가 전화를 끊으면서 한 말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난 당신이 한번도, 내게 마음을 보여준 적은 없었어도, 나하고 같은 마음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만두려구요."

순간, 그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슬프게 웃었습니다.

대신 친구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또, 떠나갔다."

...


휴대전화에 저장되있는 이름과 전화번호 중에 종종 '이 사람이 누구지?' 하는 이름과 전화번호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떠올리며, 남자는 휴대전화 속의 전화번호부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맨처음 저장되있는 사람부터 한사람씩 차례대로 확인해가다- 그 여자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 여자 번호를 아직도 지우지 않고 있었다니…….'

남자는 여자 이름 석 자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냥 삭제하지 않고 왜 전화를 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담담하고 깔끔하고,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음성이었습니다.

하기는 그래서 착각이 가능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늘 담담하게 굴지만, 그래도 내가 싫지는 않은 여자다- 둘 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한밤중에 만나자고 해도, "그래요 그럼" 하지 않는가.
"내가 싫지는 않은 거지요?" 라고 물을 때마다 미소로만 대답하지만, 이 또한 "그래요"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남자는 늘 여자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지쳐갔고,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고, 그러면서 슬슬, '나 혼자 착각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굳게 마음을 먹고 여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다고 하는데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만나줘서, 한때나마 행복했습니다.'


...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를 사랑하며 또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반면에 타인을 괴롭히고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사람이 많다.'







KBS 1FM 93.1MHz
오후 4시 정세진의 '노래의 날개 위에' 중
고정코너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2006년 10월 31일자 방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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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좋아하는 정세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2006. 11. 06.일자로 어딘가에 갈무리를 해두었던 글을 끄집어내 옮겨보았다.

말이 넘치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과는 달리, 그 방송에는 음반에 딸려온 조그만 라이너 노트 같은 짤막한 멘트만 있었다. 일상을 담는 담담한 그 목소리를 좋아했고,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오후 네시를 좋아했다.

며칠 전 오후 네시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분명 낯익은 그 방송이었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진행 아나운서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새 작가님도, 피디님도 다 바뀌었더라.
그래서일까, 곡선정도 어딘지 조금 낯설었고.. 오래 듣지 못하고 라디오를 껐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들어봐야지. 그리고 신청곡을 하나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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