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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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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은 EIDF 공식사이트의 '나도 EIDF 평론가' 게시판에 실었던 다큐멘터리 감상평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막 다 보았을 때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방송된 당일날 컴퓨터를 켜고 접속해 본 작품 페이지에서 의외로 마이클 무어를 옹호하면서 작품에 혹평을 하는 20자평들이 많이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시일이 지난 지금은 그 비율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반박을 하는 형태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20자평에 올리기에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EIDF 평론가 게시판으로 옮겨적었습니다. 급하게 쓴 글이었는데, 운좋게도 심사를 통해 선물을 주는 이벤트에 당첨되었더군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21일 금요일, EIDF 사무국에서 보내온 선물이 도착했기에 기념삼아서 글을 다듬은 후 블로그에도 올려봅니다. 글을 쓴 계기가 좀 불순해서인지, 다 쓰고 난 후 글을 보니 좀 딱딱하게 되었다 싶지 않나 싶기도 한데, 견고한 글투는 잘쓰면 참 매력적인데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글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것보다도 잘 쓰지를 못하니깐.
다큐멘터리적 진실과 윤리적인 방법(Ethical Method)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있을까? - 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
주말에 TV 앞에 앉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평소 TV를 즐겨보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주 토요일 밤은 TV앞에 앉아서 TV와 함께 보냈다.
가족들과 과일을 먹기 위해 거실에 앉은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프로그램은 KBS의 '미디어 포커스'였다. '미디어 포커스'는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으로, KBS를 비롯한 다른 신문,방송 매체의 보도 태도나 사실 왜곡, 저널리즘 속 윤리적인 문제를 주로 지적하고 비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서너꼭지로 나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만 마침 어젯밤은 200회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특집용 구성이었기에 그날의 주제는 단 하나. '미디어 비평, 저널리즘을 지킨다'였다. 이 날의 특집 프로그램의 내용은, 호주 공영방송 ABC를 대표하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인 Media Watch를 중점적으로 취재하여 미디어 비평의 가치를 부각하고, Media Watch와 미디어 포커스와 비교하며 200회 동안 쌓인 프로그램의 노고와 성과를 점잖게 자축하는 내용이었다.
미디어 포커스를 다 보고 난 뒤, 채널을 EBS로 돌려 EIDF가 시작할 때부터 점찍어놓았던 '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를 보았다. 작품의 전체적인 만듦새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계 스타의 전혀 다른 면모와,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그의 작품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던 흥미로운 기회였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데비 멜릭과 릭 케인은 호주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마이클 무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호의적인 출발과는 달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주변에 엇갈리는 평가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 무어는 그들의 인터뷰 요청을 갖은 핑계를 대며 피하게 되고, 두 감독은 마이클 무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그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가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켰던 전례가 있고, 그의 다큐멘터리들에 조작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무어의 특이한 성격을 다룬 부분보다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그의 작품들 중에서 조작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이 더 놀라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무어가 '사실'을 가지고 '조작'을 하는 방식은, 앞서 보았던 '미디어 포커스'가 주로 다루는 주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 보고 난 뒤에 이 다큐멘터리가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오늘 EIDF 작품 페이지에 올라온 20자 평을 보니 이 작품에 대해 반감섞인 의견이 많아서 조금 놀랐다. 마이클 무어의 사실 조작과 왜곡을 지적하는 이 다큐도 역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큐의 내용은 인신공격이나 비난과 마찬가지라며 마이클 무어를 옹호하는 글들이었다. (그리고 20자 평에 내가 본 다큐멘터리와 다른 의견들에 대한 생각을 적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 지우고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다.)
<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가 보여주는 방식이 무어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감독의 의도한 바인 듯 하다. 감성적인 편집과 나래이션 뿐만 아니라 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무어를 인터뷰하기 위하여 고분분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로저와 나>를 연상시킨다. 또한 마침내 '짧은'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헤어지기 전에 마이클 무어와의 포옹을 전하는 감독의 시선과 목소리에서는 (그 인터뷰이-마이클 무어-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비꼼까지 담겨있다.
하지만 그 모든 보여주기 방식이 무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마이클 무어가 그의 작품 속에서 항상 넘고 있는 선을, 데비 멜릭과 릭 케인은 넘어서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 상에서 의도를 담고 '편집'되어 보여지는 인터뷰들과 화면들은 관객들을 겨냥한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 보다는, 주욱 나열한 다음 생각할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식이다. 다큐멘터리 속의 많은 인터뷰들은 무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감독 역시 그쪽에 더 무게를 두고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를 좋아하며 지지한다는 목소리도 담겨져있다. (그리고 감독은 그들을 비꼬지 않았다.) 결국 마이클 무어의 품성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가 지나치게 왜곡되어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다루는 내용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마이클 무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입장에서 마이클 무어를 비판한다.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 작품의 두 감독은 앞서 말했듯 무어의 방식을 연상시키는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방법을 택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허용되는 방식이다. '어떤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정치적인' 주장에 대한 동의여부와, 무어 개인에 대한 엇갈리는 '평판'을 떠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생각해 볼 만한 것이라는 점이다.
<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번역된 제목보다는 'Manufacturing Dissent: Michael Moore and the Media'라는 원제가 더 작품의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마이클 무어에 대한 주변의 상반된 평가, 그 동안의 모순적인 행보, 주장을 위해 다큐멘터리에 조작을 가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이 다큐멘터리라는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은 곧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되지 않은 사실만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깨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떠한 조작도 가능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는 다큐멘터리 속 마이클 무어를 보며, 이번 EIDF 2007의 마스터클래스에서 애니 골드슨이 언급했던 '다큐멘터리적 진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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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facturing Dissent: Michael Moore and the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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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통에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각종 채널을 만들어서 서로에게 닿으려고 했기도 했겠지만, 이제
다양화된 채널이 소통의 필요성이나 욕구를 증대시킨다. 그만큼 의사소통의 실패에 의한 좌절감도 늘어간다. 국제 전화가 비싸다는 생각이나 인터넷으로
TV를 볼 수 없다고 믿던 시절에는 전화를 매일 걸면 연결되지 않는 시점도 있다는 것이나 TV 스트리밍이 제대로 안 될 때 치솟는 스트레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길이 있으니까 다니지, 없으면 돌아가거나 가지 않는 게 보통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길에 다시 담을 쌓아 못 다니게
하면? 선량한 사람이라도 좌절하고 화를 내게 된다.
휴대 전화가 없었을 때는 울리지 않는 전화가 사회적 인간관계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없는 것을 가지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은 울리지 않는 전화가 외롭다. 1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를 더 괴롭게 하려면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주고 '지금은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라는 얄미운 여자 목소리만 계속 듣게 하면 된다. 블로그가 없을 때는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긴 후로는 쓰게 된다. 사람들이 내 글에 반응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을 때는 반응이 없다고 구구하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채널이 있는데도 소통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집에 돌아갈 때 하늘의 샛별을
보고 쓸쓸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는 지구반대쪽에 있어도 배타고 한 달 반 가야 만날 수 있고, 편지 보내면 한 달 넘어 답장받는
시절도 아닌데도 외로움이 줄지 않았다니.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휴대폰이 있고,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면 메신저가 있고, 집에 가면 전화가
있는데도. 채널이 많아지면 그 채널을 통해 이어지는 관계만큼 닿을 수 없는 관계도 실감하게 되고, 좀 더 가까워진다고 해도 더욱 가까워지지
않음을 슬퍼하게 된다.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길이 있는데도 가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닿지 않을까봐 길을
만들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계속 계속 닿을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그렇다고 해도 외로움이 줄지 않음은 필연, 방법이
늘어난다고 해도 완전한 연결이 없듯이 계속 좌절하는 통화가 나오는 것이다. 좌절하는 블로그, 좌절하는 편지. 좌절하는 문자. 통하기 위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갔다가 돌아나오면서 좌절하는 게 사람. 그래도 또 언젠가 같은 길이든 다른 길이든 돌아가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만드는 의사소통의 채널은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신도시의 거리가 아니라, 아리아드네의 실로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와 같은 건지도. 그러니 길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나갈 수 있는 길만큼 잃어버리는 길도 많은 게 아닌가.
- milkwood '채널의 확대와 좌절된 통화' (마지막부분 발췌)
'나갈 수 있는 길이 많아진 만큼 잃어버리는 길도 많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 그것 자체가 이 다스리기 힘든 외로움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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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五月)
피천득(皮千得)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은 피천득 선생님의 글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중 하나다. 2005년 5월 13일 오후 네시.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낭독되는 걸 들었던 것이 첫 기억이었고, 이젠 나 또한 스물한살의 오월을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다.
거리를 채우는 연한 초록빛이 가장 미칠듯이 빛나는 때는, 5월 중에서도 바로 '봄비 내린 다음 날'이다.
2007년 5월 25일도 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의 끝자락에, 하늘을 떠난 그가 행복하길 빈다.
Requiescat in Pace.
ps. 이 시대에 거장들은 항상 떠나기만 한다. 올해만도 가슴아픈 부고가 여럿있었다. 이쯤되면 다음차례는 누구일까 걱정될 정도다. 장 보드리야르, 커트 보거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피천득.. 모두 모두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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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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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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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인연의 고리를 풀어버리고 떠난 남자입니다. 그런데 여태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하지 않고 있었다니…. 여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복잡하게 계산하지 말고, 단순하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
여자는 재빠르게 이유를 만들어냈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이라고 남자가 인사를 했습니다. 여자는 "웬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휴대폰에 저장되있는 전화번호를 정리하다 여자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그냥 전화를 걸어봤다고 말했습니다.
"내 전화번호를 왜 여태 갖고 있어요? 난 이미 지운지 오랜데‥"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이제 지울거라고 하면서 몸 건강하게 잘 살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전화받는 목소리가 꼭 내 전화인걸 알고 받는 거 같아서, 난 당신도 아직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줄 잠시 착각했어요. 하긴, 난 늘.. 착각하니까."
남자가 전화를 끊으면서 한 말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난 당신이 한번도, 내게 마음을 보여준 적은 없었어도, 나하고 같은 마음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만두려구요."
순간, 그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슬프게 웃었습니다.
대신 친구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또, 떠나갔다."
...
휴대전화에 저장되있는 이름과 전화번호 중에 종종 '이 사람이 누구지?' 하는 이름과 전화번호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떠올리며, 남자는 휴대전화 속의 전화번호부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맨처음 저장되있는 사람부터 한사람씩 차례대로 확인해가다- 그 여자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 여자 번호를 아직도 지우지 않고 있었다니…….'
남자는 여자 이름 석 자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냥 삭제하지 않고 왜 전화를 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담담하고 깔끔하고,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음성이었습니다.
하기는 그래서 착각이 가능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늘 담담하게 굴지만, 그래도 내가 싫지는 않은 여자다- 둘 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한밤중에 만나자고 해도, "그래요 그럼" 하지 않는가.
"내가 싫지는 않은 거지요?" 라고 물을 때마다 미소로만 대답하지만, 이 또한 "그래요"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남자는 늘 여자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지쳐갔고,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고, 그러면서 슬슬, '나 혼자 착각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굳게 마음을 먹고 여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다고 하는데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만나줘서, 한때나마 행복했습니다.'
...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를 사랑하며 또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반면에 타인을 괴롭히고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사람이 많다.'
KBS 1FM 93.1MHz
오후 4시 정세진의 '노래의 날개 위에' 중
고정코너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2006년 10월 31일자 방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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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좋아하는 정세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2006. 11. 06.일자로 어딘가에 갈무리를 해두었던 글을 끄집어내 옮겨보았다.
말이 넘치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과는 달리, 그 방송에는 음반에 딸려온 조그만 라이너 노트 같은 짤막한 멘트만 있었다. 일상을 담는 담담한 그 목소리를 좋아했고,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오후 네시를 좋아했다.
며칠 전 오후 네시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분명 낯익은 그 방송이었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진행 아나운서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새 작가님도, 피디님도 다 바뀌었더라. 그래서일까, 곡선정도 어딘지 조금 낯설었고.. 오래 듣지 못하고 라디오를 껐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들어봐야지. 그리고 신청곡을 하나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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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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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로 한국과 미국 사이의 FTA 체결에 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FTA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측면과 영역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극단주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일부 부분들을 만약 한국이 저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저작권의 맥락에서 네 가지 요소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요소는 저작권의 집행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이는 지적재산권의 발전을 권장하고자 하는 국가에 한해서 아주 합리적이고 적합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한국 내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기존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기술적-법적 싸움은 몰상식한 제도를 둘러싼 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저작권 본래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행위입니다. 저작권의 목적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인센티브는 명백히 장래에 발효되는 미래의 가치입니다. 미래의 행동에 대해서만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것을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의 논리에 따라, 만약 기존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일에 대한 인센티브를 키울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든, 1955년에 활동한 작가는 더 이상 아무런 창조적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한 저작권 본연의 논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기존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절대로 연장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 창조물에 대한 지불을 마쳤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그 창조물을 이용하기 위해 또 한 번 돈을 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 뒤에는 상당한 압력이 행사됩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기존의 기간을 연장하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존의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면 이는 영국 의회에서 몇몇 자유당원들이 제시한 원칙에 준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작권자들이 기간 연장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사전 등록을 하는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합니다. 우리 경험상 미국과 같이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저작권자의 90% 이상이 기간 연장의 혜택을 위한 등록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창작물이 저작권 위배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유재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등록을 한 사람에 한해 필요한 사람들은 기간 연장의 혜택을 볼 수 있고, 우리 사회는 나머지 창작물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FTA의 세 번째 요소는 컴퓨터의 캐시 기억장치에 보존되어 있는 임시 파일들까지 저작권법으로 통제를 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제가 말씀 드렸다시피, 저작권법의 핵심은 ‘복제’를 통제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이것은 노래나 DVD의 복제만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번 컴퓨터를 작동시킬 때마다 발생되는 프로그램의 임시파일에 대해서도 저작권법을 적용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미국의 주장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몰상식한 법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치면 컴퓨터를 사용할 때마다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가 생기고, 창의성과 혁신의 맥락에서 허가제는 엄청난 짐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의 디지털 새천년 저작권 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에 반영된 원칙들을 강요하는 미국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법은 복제방지 프로토콜 기술을 피해가는 것을 범죄로 정의하고 있고 이는 설사 저작권법 하에서 합법적인 범위 내에 이루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정사용(Fair Use)은 예외적으로 저작권법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만약 저작물의 이용과 배포를 통제하는 기술이 있다면 이 법은 설사 공정사용을 위해 이 기술을 피해갔다 하더라도 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서 설명한 Read Only 와 Read Write 문화의 배경들과 비교해서 인식해야 할 점은 디지털 권리 관리가 강화될수록 Read Only 인터넷은 발전하겠지만 Read Write 인터넷의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술들이 사람들의 문화 소비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그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문화를 재사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논쟁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균형의 가치가 저작권 정책에 대한 담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여러분뿐 아니라 미국 시민들에게도 큰 혜택을 안겨줄 것입니다. 미국은 지금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 극단주의를 강요하고 있는데 그 비용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균형의 가치는 아시아 지역의 개선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고, 미국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떠나, 개인적으로 이번 FTA 협상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었던 분야는 지적재산권 문제였습니다.
지적재산권 분야는 국내의 많은 언론들이 꼽은 '주요 쟁점 분야'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뉴스에 얼굴을 내비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협상 슬슬 마무리 되어갈 시점에 이르자 '저작권 보호기간이 70년으로 연장 합의' 라는 이야기가 어디선가 들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정작 타결이냐 결렬이냐 한창 언론상에서 줄다리기가 있었던 48시간 협상연장기간 동안에는 오로지 들리는 소식이라곤 '쇠고기'와 '자동차' 뿐.. 다른 분야의 자세한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두리뭉실하게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같은 이야기만 동어반복되고 있을 뿐. (하지만 돈이 있어야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거겠죠. 한미 FTA는 내 문제가 맞습니다.)
기대도 안했지만 예상대로 FTA협상 타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 이제 결정이 났다고 하니 어디 뚜껑을 열어볼까요?
신문 기사 등에 자주 언급되는 보도자료가 있더군요. 외교통상부 발표의 '한미 FTA 분야별 최종 협상결과'. 이 자료에 의거에서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결과를 찾아봤습니다.
지식재산권
1. 협정문 주요 내용 □ 저작권 ◦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또는 저작물 발행 이후 70년으로 연장 - 단, 보호기간 연장 시점을 협정문 발효 후 2년간 유예 ◦ 우리 권리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방송보상청구권을 내국민대우원칙 예외로 설정 ※ 방송보상청구권은 방송 등에서 음반이 사용되었을 경우, 실연자·음반제작자에게도 보상해야 함을 규정 ※ 우리나라는 상호주의를 전제로 방송보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동 권리를 인정하지 않음. ◦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복제권 인정 - 단, ‘공정이용’(fair use)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 확보 ※ 일시적 복제는 컴퓨터 사용시 RAM에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복제 등을 지칭하는 개념 ◦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행위를 금지하되, 추가 예외 규정 논의 근거를 도입 ※ 이용통제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금지 규정 : 우리 저작권법에 기규정 ◦ 온라인서비스제공자 면책 규정 강화 - 온라인 침해에 대한 통제권에 따른 유형별 분류를 통해 차등 책임 부여 ◦ 불법 해독된 위성 또는 케이블 신호 수신·사용 금지 ◦ 정부의 정품 저작물 사용 의무화 □ 집 행 ◦ 상표 및 저작권 침해에 대한 법정손해배상제도 - 실손해배상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전에 법으로 손해배상액의 상한과 하한을 정하는 법정손해배상제도 도입 ※ 미측은 애초에 특허 침해시 3배수 및 부가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요구 ◦ 법원에 지재권 침해물품 수출금지 권한 부여 등 민사소송절차 강화 ◦ 저작권 침해에 대해 고소 없이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사법당국에 부여 ◦ 저작권 상품에 대해서도 저작권 침해 물품으로 의심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자동 반출정지 및 권리자 통보가 가능하게끔 신고제도 도입 (상표와 특허에 관한 내용은 제외했습니다.)
....저작권 분야만 본다면, 말그대로 '일방적인 양보'란 것이 정말 적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레식 교수가 지적했던 네가지 요소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미국의 요구에 따라 ① 저작권의 집행을 강화 했고, ②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했으며, ③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복제권을 인정한데 이어 ④ DMCA와 마찬가지로 기술적 보호장치를 우회하는 행위도 금지(요건 지난 개정저작권법에 포함되어있던 것이었죠)하기로 했습니다. .. 이중에 단 한가지도,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네요. 그나마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추가 예외 규정 논의 근거를 도입'이라는 부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집행 부분에 있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 고소 없이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사법당국에 부여' 라는 부분은 저작권법의 비친고죄화를 말하는 것 아닌가요? 이건 지난번 저작권법 개정 때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부분으로 아는데.. (이걸 국내의 국회도 아니고 미국의 요구로 법을 개정하게 생겼으니...;)
사실 저작권 분야는 메이저 언론사들이 이번 FTA를 포장할 때 항상 꺼내드는 표현인 '시장개방'과는 가장 거리가 먼 분야라고 할 수 있겠죠. 애초에 개방이 아닌 보호. FTA가 그렇게 싫어한다는 '보호'에 대한 것이니까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요? 그럼 우리의 요구는? 이럴때 FTA찬성쪽에선 보통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시장이 개방되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할 것이 많지 않고, 더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변호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작권 분야에 대해서는 저런 변호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더 개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보호를 하는 것 뿐이니까요.
이 분야가 이럴진대, 다른 분야는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번 한미FTA에서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늘어날 수 도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습니다. '자유 문화'를 읽으며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이 저작물의 이용과 재창조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죠.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길, 협상차원에서라도 막아주길 바래왔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가네요. 앞으로 눈을 크게 뜨고, 이 한미FTA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주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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