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잡담/단상  2007/03/05 15:05

시사저널과 리베라시옹



 최근 구독해서 보고 있는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월호 기사를 읽던 중에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휴렛팩커드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심층취재기사 속에서 이야기 했던 것을 갑자기 발견한 셈이었죠. 이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단지 돈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없애고 사람들을 마구 자르는 주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도 알게 된 것이죠.” 이듬해 봄, 드 로스칠드가 <리베라시옹>의 창립자이자 경영자인 세르주 쥘리를 해고했을 때, 직원단체의 한 대표는 동료들의 순진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리베라시옹 역시 기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주가 있고, 주주가 있으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작동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뭐라고? 노사갈등이 언론기업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단지 리베라시옹의 직원들만 이 같은 ‘발견’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아니다. 2006년 한 해 동안 여러 일간지 및 주간지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파업노동자들에 대해 엄격한 논조를 유지하는 <프랑스 수와>의 직원들 역시 전 직원 중 절반이 해고되는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5주 동안 파업을 벌였으며, <파리 마치>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다는 죄목으로 사주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괘씸죄를 적용, 편집장을 해고하자 1968년 이후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던 파업에 돌입했다. <주르날 뒤 디망슈>의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에 대한 근심을 토로하고 있으며, 라가르데르 악티브 메디아 그룹의 계열사 노조들은 라가르데르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이 초래할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한다. 라가르데르 회장은 더 이상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기자들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그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는 환상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언론독립이라니, 도대체 무슨 쓸데없는 소립니까? 기자들은 언론독립이니 뭐니 떠들기에 앞서 자기들이 일하고 있는 신문사가 존속할지 어떨 지부터 고민해 보는 게 나을 겁니다.”


- '언론계, 암흑의 길에 들어서다'
피에르 랭베르(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월호


 시사저널 사태와 비슷한 일들은 요즘 프랑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창립자가 해고당한 '리베라시옹', 괘씸죄로 편집장이 해고당한 후 40년만의 파업에 나선 '파리 마치' 뿐만 아니라 '르몽드',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수지 '피가로', 프랑스 제1의 지역주간지 '퓌플리엡도', 그리고 'AFP 통신' 등 수많은 언론사에서 2004년부터 노사간 긴장으로 인한 크고작은 파업과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났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보통 이 모든 갈등은 대부분 사측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인터넷 뉴스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언론들, 특히 인쇄매체들에게 위기가 찾아올거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지요. 결국 그러한 위기감이 언론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발행인, 사주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언론독립을 추구하던 전통적인 경영방식에서 '고용의 유연화'를 추구하고 돈 문제를 중요시하는, 급속도로 자본친화적인 경영방식으로 돌아선 듯 합니다.

 이 같은 흐름은 이젠 어찌보면 피해가기 힘든 거대한 흐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쨋거나 그동안 존경을 받아온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언론들이 '할말을 다 못하는' 언론으로 바뀌어 간다는 점에서는 우려할만 한 일입니다.

 때로는 이런 상황이 언론인들의 반항을 고무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BBC 방송국 직원들이 수천 명의 일자리를 공중분해해버리는, 이른바 ‘현대화’ 계획에 맞서 3년째 투쟁중이다. 독일(2004년)과 포르투갈(2005년)에서도 언론부문 단체협약의 재협상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파업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사용자 단체는 임금인하와 유연성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동일한 이유로 지난 12월 이탈리아의 신문기자들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겼는데, 바로 3일 동안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한 것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파업관련 속보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기자들은 특히 임시직과 저임금 노동이 늘어나는 상황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민주주의에서 아무 쓸모없는’ 저질 저널리즘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자노조의 평가이다. 반면 신문사의 경영진들은 기자들이 노동시장의 필수적인 유연성에 저항하고 있으며 과거의 특권에 연연해 그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사실 많이 들어본 소리다. 물론 보통은 언론사 사장이 기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기자들이 파업노동자들을 비난할 때 내세우는 주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 위와 같은 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월호

 좌파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르몽드답게 기사의 마지막은 조금 비꼬듯이 끝납니다. 사실 우리나라 언론들에서도 기자들 스스로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죠. 그것이 이미 '자본에 친화되어버린' 한국언론의 슬픈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언론기자는 특권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구세대 기자들의 쉰소리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느쪽이든 '정신차리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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