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잡담/단상  2005/08/15 18:29

광복절은 현충일이 아니다


©2005 Google

오늘은 제60주년 광복절입니다.
36년간의 불우한 시절이 끝나고 나라의 빛을 되찾은지도 어언 60년. 평소 국경일에 무심한 편이지만 새삼스러운 감회와 기쁨에 젖어들게 됩니다.

60주년이 가지는 특별함 때문인지 관련행사도 여느 때에 비해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 같고, 메타사이트 등지에도 이런저런 관련 포스팅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우연히 들른 어느 블로그에서 '오늘을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보내자' 라는 글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글 속에서 '경건한 마음'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고, 나라가 해방된 날에 조국 해방을 위해 힘쓰시다 돌아가신 순국선열을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 까닭은 아마 '경건한 마음, 순국선열'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내 마음속의 광복절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울림을 전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에게 있어 광복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쁨'입니다. 나라의 빛-국권을 되찾은 기쁨, 내 나라를 되찾은 기쁨, 원치 않는 구속, 박해와 억압에서 벗어난 기쁨.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광복절은 나라에서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지정한 국경일이고, 경축식이 열리는 경축일인 거겠죠. 따라서 광복절에는 이러한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즐거운 축제나 행사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경건한 마음, 순국선열'을 더 강조하면, 숙연한 자세로 하루를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왠지 기쁨을 표현하는 것도 소극적이게 되고요. 고개를 갸웃거린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 글을 보면 왠지 오늘은 6월 6일이나 11월 17일도 아닌데, 그날처럼 보내야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버리거든요. 조금 씁쓸합니다. 자주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우리에게 광복절은 순수하게 기뻐만 할 수는 없는 날임은 알지만, 기쁨을 보다 강조해야 할 날은 아닐런지요.

그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제49회 코믹월드에 대해서도 저는 어떠한 유감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코믹에 가서 기모노를 입거나 일본을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코믹월드란 행사 자체가 광복절의 의미와 분위기에 크게 어긋난다고는 생각치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주최사인 S.E.TECHNO가 일본기업이며 본사 사장이 일본인이라고 해도, 판매전이나 코스프레에서 90%가 일본 만화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해도, 어느정도 상업적인 목적에서 열리는 행사라고 해도, 코믹월드 행사의 본질은 아마추어 만화인들의 행사이며, 축제입니다. 판매전에 나온 분들이나 코스프레를 하는 분들이 어떠한 의도가 있어서 일본만화을 소재로한 책을 내고, 일본 캐릭터의 옷을 입었던 것일까요?
참여한 분들의 대부분도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보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광복절에 대해선 다들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결과물의 측면에서도 이번 코믹월드를 보며 눈살을 찌뿌릴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요즘 광복절을 맞아 방송에서 일본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르포물이 유난히 많이 보입니다. 대부분 일본을 비판하고, 과거와 현재의 만행을 밝히는 내용들로 채워져있더군요.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둔 것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사실 앞에, 그 방송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생각의 틀'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생각의 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넘어서서, 통제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반일감정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지..
개인적으로 이러한 특집은 광복절보다 경술국치나 을사늑약이 맺어진 날에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오늘, 광복절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각자의 마음속에 광복절의 의미가 다른 만큼, 마음가짐 또한 각각일테니 어느 것을 올바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먼저가신 어른님 벗님을 생각하며 뜨거운 피가 엉킨 자취를 길이길이 지키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기쁜 마음으로 흙도 다시 만져보며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할지요. 광복절은 민족의 경축일, 한없이 기쁜 날 아닌가요.


ps.


그때 그 얼굴들. 그 얼굴들은 기쁨이요 흥분이었다.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보람이었다. 가슴에는 희망이요, 천한 욕심은 없었다. 누구나 정답고 믿음직스러웠다.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 피천득, '1945년 8월 15일'

KBS 1FM '노래의 날개 위에' 2005년 8월 15일 방송에서 인용된 피천득선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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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엣 2005/08/15 18:43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달크로즈 2005/08/16 02:41 X
요는, 너무 신경쓰지 말고 살자는 것이지요. :)
세이지아 2005/08/15 19:52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광복절은 축제쪽이 더 맞다고 생각되는걸

지금 곱씹어보니까 TV방송프로그램은 현충일이나 광복절이나 큰차이가 없어보여-_-; 테마차이만 있지
달크로즈 2005/08/16 02:47 X
우리나라 방송들이야 언제나 그렇지. 하지만 이번 광복절은 유난히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까 밤에 흘긋 본 시사투나잇마저도 일본 우익특집이니 뭐니 하는걸 보니 한숨이 다 나오더군.(야스쿠니신사의 모 우익할아버지는 이번 연휴들어 대체 몇번을 본건지! 출연료라도 줘야하지 않을까. --;)
우리나라 독립투사나 독립투쟁에 대한 취재, 재발견 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수도 있었을텐데, 일본 우익 까발리기 식의 부정적인 프로그램들만 압도적이니 원..
장목수 2005/08/15 23:10  
맞는 말입니다.
광복절은 현충일과는 다르죠.
그러니 광복 60주년이죠!
달크로즈 2005/08/16 02:58 X
일부러 좀 낚시글 틱하게 제목을 갖다붙인 면도 있습니다.;
본래 저 개인적으로는 민족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이번 코믹월드 같은 행사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솔직히 저는 현충일에 코믹을 한다해도 별로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물론 잘했다고 칭찬해줄 마음도 없습니다만.;) 이번 일도, 광복절이 60주년 때문에 성대히 치러졌기에 문제가 된 부분이 없지않나 싶습니다.
어쨋거나 광복 60주년은 축하할 일이지요. :)
마른미역 2005/08/15 23:48  
하지만 광복절은 일본이 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임과 동시에 미 군정이 일반명령 1호에 의해 한국의 남과 북을 38선을 기준으로 나눈 날이기도 하지요.
'분단이 시작된 날'임을 생각하면 한없이 기쁜 날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달크로즈 2005/08/16 03:28 X
찾아보니 연합군의 '일반명령 1호'가 공포(발령)된 때는 제2차세계대전 공식 종전일(항복문서조인일)인 1945년 9월 2일이라고 나오는군요.; 이때 한반도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각각 소련군과 미군에게 항복했고, 그 후 9월 7일에 미군이 포고령 1호를 발표했으며, 9월 8일에 우리나라에 진주했습니다. 분할점령의 밑그림이야 8월 15일 전부터 그려지고 있었을테니, 8월 15일을 '분단이 시작된 날'로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쨋거나 자주독립한 날이 아니기에, 분단의 숙명을 가지게 된 것이니.. 무작정 기뻐할 만한 날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요. :)
FearLeaf 2005/08/16 02:29  
글의 전체적인 내용엔 찬성합니다.-_-/ 글을 잘쓰시는군요.;

광복절은 일단 광복을 기념하는 날이니 만큼 분명 축제여야 하지요. 네.-ㅅ-;

방송쪽은 어쩐지 최근 일본등 국제적 마찰상황에 편승해서
시청률을 노린 일본 꼬집기 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에, 일단 포스팅 내용은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중간에 코믹행사에
관한 언급에서
'코믹에가서 기모노를 입거나 일본을 찬양하는'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요, 일본을 찬양한다는 잘못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찬양은 아닙니다.)
그들은(저를 포함해서) 일본의 어떤 작가가 만든, 어떤 감독이 만든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거지, 맹목적으로 일본을 좋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니까요.^^
(...물론 실제로 개념없는 찌질이나, 맹목적으로 일본을 찬양 하는 이들은 있습니다만.)
달크로즈 2005/08/16 03:32 X
저도 그 부분은 개념없는 찌질이나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이들만을 가리켜서 표현한 것인데요.
^^; '일부분'이라는 말을 넣지 않아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도 물론! 일반적으로 행사에 참여한 분들이 사회적인 비난을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PIAO 2005/08/16 03:18  
글 잘읽었습니다. 대부분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광복절은 분명 기쁜날 국경일이죠. 반대로 일본에서는 패전(종전)기념일로 경건하게 보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아직 명확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기뻐하기도 좀 그렇긴 합니다만...
방송에서야 어떻든.. 요즘 국민정서는 일본인 자체나 문화를 싫어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국민의식수준도 많이 높아져서 구분해서 볼줄아는 마인드들이 많이 생겼죠...;;

코믹행사는 개인적으로 좀 아쉽습니다. 주말도 했는데 광복절까지 잡았어야 했나도 좀 그렇고... 물론 코믹자체나 일본캐릭을 코스하는 것은 비난당할 만한건 아니겠지만 일본전통의상이나 왜색짙은 의상은 광복절 같은 날 만큼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일부에서 여전히 존재하더군요.
광복이라는게 일본에서 벗어난 날인데요..

일본우익 관련 방송들은 머 올해 교과서다 독도다 해서 우익 그 쪽이 이슈라.... 좀 그런면이 있는거 같기도 하네요...;;

여하튼 기쁜 날은 맞습니다...^^
달크로즈 2005/08/16 03:42 X
네, 그쪽에서는 종전기념일이죠. 정말 경건하게 보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다만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일본의 사죄와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은 일본의 기득권을 가진 우익들에게 바랄 것이 못되지요.)
예전에 비하면 일본과의 관계는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붙어있는 나라치고 사이좋은 나라가 별로 없다지만 그래도 기왕 부대끼며 살바에는 친한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프레이밍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것에 약한 편이니까요.

광복이 기쁜날이긴 하지만 그 주체와 대상을 생각해보면, 일본과 간접적으로나마 관련된 행사가 달갑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지요. 하지만 좀 더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가도 되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개념없는 초딩들은 요즘은 어딜가나 있으니까요.)
프라이오스-SPeX 2005/08/16 12:34  
닭형 안녕 -ㅅ-/
9월에 서울 올라갈거야
재워주셈(...)
드디어 알고 지낸지 5년 넘게서야... 만나게 되겠네(...)
달크로즈 2005/08/16 18:32 X
그 5년이 넘는 세월 속에 연락끊긴 기간이 얼마간이었더냐...♨
아무튼 올라오면 모임이라도 추진해봅시다요. :)
달바람 2005/08/16 18:12  
안녕하세요. 달바람입니다.
제가 따로 찾아보지 않고, 단지 한겨례21만을 인용해서 글을 써서 틀릴지도 모른다는생각은 못했습니다^^;
달크로즈 2005/08/16 18:51 X
앗. 달바람님께서 직접 와주셨군요.
이미 이해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일부러 추궁하려 했다던가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
연합군, 특히 미군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분단을 내정한 것인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기에 확신은 없고요.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에서 비교적 믿을만한 정보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기사 전문을 보지 못해 알수 없지만 한겨레의 성향을 고려해볼때 그 한겨레21의 기사에는 NL쪽(혹은 북한쪽?)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우리겨레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이 된 그 순간부터 이미 분단의 숙명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요. 한겨레21에서도 아마 그러한 맥락에서 한 말일테구요. 또, 저는 그 부족한 해방, 부족한 독립이라도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편일 뿐입니다. 해방의 그 순간엔 아직 남북이 하나였으니까요.
방문 감사합니다. :)
lckbless 2005/08/17 09:21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가 아니고
하지만 광복을 축하하는 날에 굳이 기모노를 입고 일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사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일본 문화와 옛날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에 거리가 있다는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아직 광복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신 독립투사분들도 많이 살아계시고, 일제시대의 상처를 갖고 계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셔.
그런 마당에 광복절에 그런 행사를 했다는것, 그리고 그 행사에서 기모노를 입고 놀았다는것은 '비판'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달크로즈 2005/08/17 12:01 X
맞는 말이야. 나도 기모노 입고 논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하지만 행사 자체에 관해서는, 과연 비판받아 마땅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고 내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변호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정말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가진 분들이 '일반적인' 일본 만화 그림을 보면 아픔을 느끼실까?
8월 15일은 정말로 일본의 '모든 것'을 거부해야 하는 날일까?
모든 사람이 광복절에 많은 생각을 하고- 가장 일반적인 견해처럼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독립유공자분들의 헌신을 생각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광복절의 의미가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걸. '틀렸다'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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