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 of Memories


음악은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by 달크로즈
잡담/단상  2005/01/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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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왕국과 유럽인 - 19세기

(전략)

 결국 영국의 식민지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자신들의 보호 아래 있는 샤 슈자를 왕위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명분은 도스트 무함마드가 영국에 위협을 가했을 뿐 아니라 아프간인들에게 좋은 왕이 못 되고, 국민들은 샤 슈자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1838년 말 6,000명의 영국군과 9,500명의 세포이 병사, 3만 8,000명에 이르는 가족과 군속이 볼란 패스를 통해 칸다하르로 향했다. 마치 유람 가듯 장교들은 다 하인들을 대동했다. 어느 장교에 딸린 하인은 무려 40명이었다. 어느 장군은 개인 물품을 실은 낙타만 60필이나 되었다. 약간의 저항은 있었으나 가즈니를 함락시키자 도스트 무함마드는 카불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신했다. 1839년 8월 카불에 입성한 영국군은 샤 슈자를 옹립하고 짐을 풀었다. 예상과 달리 샤 슈자에 대한 아프간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장기 주둔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일부 병력은 바로 철수해야 했다. 카불의 민심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많은 영국인들과 그 식솔들이 주둔하면서 식료품 값이 폭등했다. 아프간인들에게 방자하게 굴거나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는 병사들도 있었다. 영국 병사와 아프간 여인들간에 '친밀한 관계'가 잦아진 것도 민심을 악화시켰다.
 1841년 11월 2일 번스가 살던 카불 시내의 집이 군중의 습격을 받았다. 번스와 잠시 카불을 방문 중이던 그의 동생은 몇 시간을 버티다가 끝내 군중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눈뜨고 보기 힘든 그의 시신을 그의 친지가 간신히 수습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수가 불어난 군중은 영국군의 숙영지를 에워쌌다. 영국군 숙영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어하기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이곳은 지금 카불 시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프간인들은 산에 대포를 걸어 놓고 영국군 숙영지에 포격을 가했다. 이 모든 일은 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인 아크바르 한이 배후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재한 영국 최고 관리인 윌리엄 맥노텐은 아크바르 한과 협상을 시도하다가 역시 살해되었다. 목과 사지가 잘린 그의 시신은 카불의 바자르에 걸렸다. 노령에다 무능했던 영국군 사령관 윌리엄 엘핀스톤(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의 사촌)은 협상 끝에 영국군과 그 식솔들의 무사 귀환을 보장받았다. 1842년 1월 6일 드디어 2만여 명의 병사와 식솔들은 카불을 떠났다. 그러나 첫날 밤 많은 수가 얼어 죽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아프간인들의 공격으로 그 날에만 3,000명이 죽어 갔다. 1월 13일 아침 칸다마크에 도착한 사람은 수십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서 마지막 결전을 벌이고 모두 숨졌다. 단 한 사람, 의사인 브라이든만이 추격을 따돌리고 잘랄라바드의 영국군 숙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밖에 인질로 잡히거나 포로가 되었던 100여 명이 나중에 바미얀에서 구출되었다. 아프간인들은 카불에서 외세를 몰아낸 데 대해 환호하며 영국인들의 나머지 거점을 압박했다.
 그러나 영국은 신속하게 보복에 나서 칸다하르와 잘랄라바드에 증원군을 파견했다. 영국군은 9월에 카불에 입성하여, 카불 바자르를 부수고, 자신들이 특별히 수모를 당한 곳을 파괴한 뒤 하이버르 패스를 통해 철수했다. 이것으로 제1차 아프간-영국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영국이 입은 손실은 막대했다. 1만 5000~2만 명의 전사자가 나고, 비용도 1,700~2,000만 파운드나 들었다.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이제 아프간인들의 신뢰와 호의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찰스 매슨은 이 불행한 사태 이전에 아프간인들이 이방인에게 매우 우호적이며 어느 곳의 이슬람교도보다도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일시에 사라졌다. 아프간인들의 마음속에 영국인들은 무자비한 침략자로 각인되었고, 영국인들은 아프간인들을 정직하지 못하고 야만적인 폭도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업보는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영국이 란지트 싱과 샤 슈자를 선호하며 도스트 무함마드와 갈등을 빚고 있는 동안, 매슨은 도스트 무함마드를 두둔하며 페샤와르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주장했다. 그는 도스트 무함마드가 훌륭하지는 않아도 능력 있는 군주라고 여겼다. 번스도 처음에는 매슨과 같은 의견이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고려할 때 굳이 자신이 속한 인도 식민지정부 수뇌부의 판단에 맞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안이한 판단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1838년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매슨은 카불을 떠났다. 식민지정부는 고고학 조사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고, 매슨의 정보 분야 후임자를 카불에 보냈다. 매슨은 1942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 해에 출간된 여행 기록에서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참사를 착잡한 심정으로 회고한다.

영국이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다시는 그러한 경솔함과 무모함으로 인더스를 넘어 원정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참사를 경험 삼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람들은 더 이상 인도 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경솔함과 어리석음으로 이 나라에 대한 평판을 땅에 떨어뜨린 그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후 매슨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853년 11월,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 이주형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p.202~205 부분 발췌
(※ 발췌된 글에 대한 모든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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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KBS 추적60분에서 동아시아의 한류 열풍과 한국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에 대한 내용을 함께 묶어서 다루는 것을 보다보니 문득 전에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을 읽다 갈무리 해두었던 이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월남전 때 마을 전체가 한국군에 의해 거의 몰살당했다던 베트남의 한 마을에도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그와 동시에 한국인들의 베트남과 중국, 필리핀에서의 '매춘 관광'의 실태와 그 폐해, 상하이 근처의 한 작은 도시에서 중국 영세상인들의 신용을 배신하고 수천만원을 떼먹고 한국으로 도피한 사람의 이야기도..
필리핀에 골프를 치러 가서, 리조트의 샤워실에 대변을 보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해야할까,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였군요.

물론 이런 것들은 발췌된 전쟁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겠지만, 보면서 그냥 떠올랐습니다. 다른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라는 것.

ps. 어쩌면 굵게 강조한 저 한 부분을 위해 이 많은 부분을 다 옮겨적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이주형님께 좀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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